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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리포트] 저유가 주도 美·사우디…석유패권 ‘고차 방정식’

[MK리포트] 저유가 주도 美·사우디…석유패권 ‘고차 방정식’

◆ 유가의 정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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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에너지 패권 무력화시키는 미국발 글로벌 셰일혁명 저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이슬람국가(IS) 자금줄 통제.” 

“원유수출에 목매는 러시아 재정 피폐화를 통한 러시아 견제.” 

유가 전문가와 정치학자들이 수급이라는 경제적 요인 외에 최근 가파른 유가 하락 배경으로 지목한 글로벌 지정학적 역학구도다.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 가지고 해석하기보다는 그 안에 잠재된 지정학적 유인을 포함해 바라봐야 저유가 함수를 제대로 풀 수 있다는 진단이다. 

국제유가는 지난 6월 중순 올해 최고점을 찍은 이후 날개 없는 추락을 지속하고 있다. 13일 현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북해산 브렌트유 12월 인도분은 6월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한 상태다. 최근의 유가 급락은 원유수급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본격화된 셰일혁명을 발판으로 미국발 원유 생산량은 확대일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내년 미국 원유 생산량은 일간 950만배럴로 증가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산유국 자리를 꿰차 ‘사우디아메리카’ 시대 개막을 알릴 예정이다. 

사우디와 함께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 지위를 양분하고 있는 러시아도 서방 측의 경제제재로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세수 확보를 위해 증산에 나섰다. 여기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좌장 역할을 하는 사우디도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증산카드를 꺼내들었다. 수요 증가 속도보다 원유 공급량이 더 많이 늘어나면서 공급 과잉현상이 심화돼 수급이 붕괴됐고 저유가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여기까지는 수급구도만으로 최근 저유가 흐름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저유가 속살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석유 헤게모니를 둘러싼 다툼과 좀 더 복잡한 지정학적 이슈가 실체를 드러낸다. 

사우디의 행보를 보자. 그동안 사우디는 전 세계 석유수입국들이 유가가 높다고 아우성을 치면 증산을 통해 유가를 떨어뜨리고 반대로 유가가 떨어질 듯하면 감산을 통해 값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유가 흐름을 통제해 왔다. 그런데 최근 유가 급락 속에서도 미국 수출 원유가를 할인하는 등 저유가를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가 출혈경쟁을 각오하면서 저유가를 방관하는 배경에는 미국발 셰일혁명에 급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현재 경제적으로 셰일유·가스를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지만 미국이 산유국들의 에너지패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셰일기술 해외 수출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 중동에는 ‘눈엣가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우디가 계속 에너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길은 저유가 정책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뿐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CNBC에 따르면 사우디 원유 생산비용은 산유국 중 가장 낮은 배럴당 10달러에 불과하다. 캐나다 50~100달러, 러시아 40~60달러 등과 비교해 아주 낮은 수준인 것은 물론 복잡한 생산과정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높은 셰일유·가스 생산비용 70~80달러보다 크게 낮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가 미국발 셰일붐 죽이기에 나선 데는 미국 정부에 대한 서운함과 경고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미국이 중동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사이가 좋지 않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핵협상 타결을 통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게 사우디 입장에서는 마땅치 않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란 지원을 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몰아내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저유가는 사우디 적대국인 이란 재정을 파탄낼 수 있다. 월스트리저널에 따르면 이란이 균형재정을 맞추려면 유가 수준이 130달러는 돼야 한다. 사우디의 97달러보다 크게 높다. 러시아는 105달러 수준이다.

 

유가를 낮게 가져가 사우디 왕정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IS 자금줄을 말려 세력 확장을 제지할 수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 시리아를 두둔하는 러시아 영향력을 견제하고 타격을 주려면 저유가가 필요하다.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은 에너지 기업 자금을 권력장악 쌈짓돈으로 활용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지가 유가 하락으로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