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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증권

통제불능 투기성 자금 20조~32조 위안 규모 ‘차이나 쇼크’ 진원지로

중국 경제 위협하는 ‘그림자 금융’
통제불능 투기성 자금 20조~32조 위안 규모 ‘차이나 쇼크’ 진원지로


지난달 24일 오후,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후장 들어 무조건 팔고 보자는 ‘투매 쓰나미’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전장보다 무려 5.3%나 급락하며 6개월 만에 심리적 지지선인 2000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이날 폭락 장세는 23일 인민은행이 분기보고서를 통해 단기금리 급등이 ‘그림자 금융’(정부 규제를 받지 않는 비은행권 금융)과 투기성 거래에 대한 왜곡 현상의 결과라고 밝힌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인민은행이 21일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단기 금리 지표인 상하이은행 간 금리인 시보(SHIBOR) 금리가 24일 오전 사상 최고치인 13.4%까지 치솟아 신용경색 현상이 가중돼 중국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온 것이다. 


중국 경제의 돈줄 역할을 해 온 그림자 금융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국 그림자 금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글로벌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중국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안정됐지만 그림자 금융에 대한 위험은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도 그림자 금융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있다. 주광야오(朱光耀) 재정부 부부장은 지난 7일 “중국의 금융 시스템은 그림자 금융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실태 파악을 위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적정한 수준의 자금과 신용을 공급하고 신중한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해 그림자 금융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최소 20조 위안(약 3662조원·파이낸셜타임스)부터 최대 32조 5000억 위안(5953조원·중국 광파증권)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인 52조 위안의 40~60%를 차지하는 셈이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이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낸 것은 2011년 4월. ‘중국 제조업의 1번지’인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의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비롯됐다. 그해 8월 이후 원저우의 기업인 등 100명 이상이 빚을 갚지 못해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했고, 자금 거래를 주선했던 대출 중개업체도 800곳 이상이 파산하면서 사회 이슈화됐다. 당시 원저우시의 개인과 중소기업 등 경제 주체의 90% 이상이 그림자 금융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림자 금융은 운용 자금의 대부분을 신용도가 낮은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고금리로 대출해 주는 만큼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시스템은 신탁회사, 전당포, 대출보증회사, 사금융, 자산관리상품(WMF) 등으로 이뤄진다. 신탁회사는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은 자금을 각종 사업 프로젝트나 부동산 대출 등으로 운용, 관리한다. 6월 말 현재 68개 사가 성업 중이다. 이들의 운용 자산은 2007년 1조 위안에서 2011년 4조 8000억 위안으로 5년 새 5배 가까이 폭증하며 투자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중국 전역에 4000곳 이상이 영업하고 있는 전당포는 자동차·보석·유가증권·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을 전당물로 하는 1~3일간의 초단기 대출에 주력하고 있다. 신용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대출에 대한 보증 수수료를 받아 운영하는 대출 보증회사는 1900개 사가 활동하고 있다. 수수료가 전당포 금리의 절반에 불과한 만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불법적인 대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대출액의 일정 부분을 지하 사금융 형태로 운영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다 보니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리차이(理財) 상품’으로 불리는 WMF는 신탁회사가 취급하는 금융상품으로, 모집한 투자자 자금을 신용도가 낮은 부동산 개발회사나 중소기업에 고금리로 대출해 줘 수익을 올린다. 지난해 말 WMF 잔액은 전년보다 54%나 급증한 7조 1000억 위안에 이른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4200만개 사로 추정되는 중국 중소기업의 97% 정도가 정부의 엄격한 대출 규제 탓에 은행권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대부분의 업체가 규제의 사각지대인 그림자 금융을 찾아 고금리를 물어가며 이를 자금 조달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신용평가사, 서방 전문가 등이 중국 당국에 잇단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5월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가 2010년 17조 3000억 위안에서 2012년 29조 위안으로 불과 2년 새 67%나 폭증했다며 중국 금융에 ‘체계적 위험’(System Risk)을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지난달 “(중국이 그림자 금융을 통한)여신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는 채널로 들어감으로써 심각한 위험이 됐다”고 거들었다. ‘헤지펀드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섀도뱅킹(그림자 금융)이 지난 2007~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비슷하다”며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중국 관계당국은 그림자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문제는 그림자 금융이 실물 경제 악화와 맞물리면서 폭발력을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림자 금융을 통해 조달된 돈이 부동산 투기 등 리스크가 큰 분야로 흘러들어가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탓이다. 중국 당국이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자금줄을 조이자 단기금리가 급등하는 바람에 신용경색 사태가 빚어져 상하이 증시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중국 그림자 금융의 부실화는 언제든지 금융시스템을 혼란 속으로 빠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국 금융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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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은행과 같은 자금 중개 기능을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부 규제가 닿지 않는 비은행권 금융과 금융상품을 말한다. 증권사·투자신탁·할부금융사·헤지펀드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 또는 머니마켓펀드(MMF)·자산유동화증권(ABS)·신용파생상품 등 비금융권 금융상품이 해당된다. 흔히 신탁회사나 증권사, 보험사가 은행권 대출 채권을 리모델링해 고금리로 투자자들에게 파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 만큼 투자상품의 구조가 복잡해 손익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채 시중은행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표면화된 2008년 9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처음 사용했다.